[Short Stories] Ruthless Pt. 1

2009.04.30 11:57

DeftCrow 조회 수:4721 추천:2


 


 


페이드(Fade) 리전


C8 ? CHY VII: “드레날리 VII번 행성”


카우리코우 단지


 


봉지에 든 블루 필(Blue Pill)과 엑자일(Exile)의 수량을 오늘만도 벌써 세번째 세면서, 빌라모는 새삼 이런 짓을 하는 자신이 얼마나 혐오스러운가를 생각했다. 두 봉지의 입구를 봉하고 주머니에 넣는 그의 눈이 탁자 위에 놓여있던 리스트(Rist)-11 권총에 한동안 머물렀다. 원래부터 총이란 물건과는 전혀 맞지 않는 그였지만, 이런 일에 발을 들인 이상 개인적인 취향 같은 건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혁대에 권총을 건 그는 총을 가리기 위해 두꺼운 코트를 걸쳤다. 그리고는 몸을 더 따뜻하게 하기 위해 단추를 잠갔다. 권총을 뽑기는 좀 힘들어지겠지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아직 그렇게까지 위험한 상황을 겪은 적은 없었다. 게다가 섭씨 영하 10도의 날씨에 눈보라까지 부는 날이라 무슨 일이 일어날 리는 없어 보였다.


 


자신이 집이라고 부르는 음침한 건물을 나서면서, 빌라모는 거지 부부가 꺼져가는 모닥불에 가까이 붙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절망이나 후회 같은 건 겪을 만큼 겪었다는 듯 공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빌라모는 이번 건수를 해결하는 일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집세를 낼 기한도 몇 시간 남지 않았는데, 아직 은행 계좌에 충분한 돈을 넣지 못한 것이다. 지불 기한이 지나는 순간, 이슈콘(Ishukone)사의 순찰 대원들이 집에 들이닥쳐 그와 그의 아들을 길 바닥으로 쫓아낸 후, 살림마저 챙길 새도 주지 않고 문을 원격으로 잠글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무명의 의뢰인이 연락을 해왔고, 약속 장소는 카우리코우 단지에서 가장 치안이 허술한 지역 중 하나였다. 빌라모는 이미 여러 차례 이 일을 해온 터라 의뢰인이 대기업의 임원이자, 시의 모든 관리들과 이슈콘사의 고위층이 거주하는 부유층 단지에서 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상관에게 들킬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몸부림의 일환으로 마을에서 가장 어두컴컴한 지역만을 거래 장소로 삼아왔던 것이다. 추위에 떠는 거지 무리를 지나 걷는 빌라모의 외투 사이로 칼날 같은 겨울 바람이 몰아친다. 이런 날씨에 밖에 있을 사람들은 정말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아니면, 빌라모가 생각하길, 정말 약에 미쳐있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이 행성의 하늘을 떠다니는 200개의 대기 정화 기구 중 하나가 도시 위를 지나면서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금속으로 쌓아 올린 산이 눈과 얼음에 뒤덮인듯한 모습니다.


‘이 얼음 지옥을 그나마 사람이 살 수 있게 개척하는데 100년이 걸렸다지.’ 빌라모가 생각했다.


‘결국 이 꼴이 되었군.'


빌라모는 고개를 가로 젓다가 반대쪽에서 달려오던 스노우 캣(Snow Cat) 한대를 간신히 피했다.


 


이슈콘 사는 한 때 오직 드레날리 VII번 행성만이 페이드 리전의 유일한 금속 자원 공급원이 될 것이라 공언하였다. 개척 작업을 통해 사람이 숨쉬고 살 수 있게 되자마자 수많은 채광 단지가 행성의 표면에 들어섰고, 카우리코우 단지는 이 지역의 경제 중심 단지로 거듭났다. 수많은 광부, 사업가, 생명 공학자와 건설업자들이 카우리코우로 모여들었고, 행성의 표면과 우주 정거장에서 각기 일자리를 찾았다. 이슈콘 사에서도 많은 사업에 투자하여 큰 이익을 내었고, 새로운 사업체가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모든 게 잘 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혹독한 시련이 찾아왔다.


이슈콘의 경쟁사가 고용한 지질학자들이 근처 성계에서 막대한 양의 금속 자원을 발견한 것이다.


 


과학자들이 얼마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페이드 리전은 원래 초신성이 자주 발생하던 성운의 중심부였고, 그 덕분에 금속 자원이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 행성에서 새로운 광맥을 찾아낼 때마다 자원의 가격이 폭락했고, 결국 이 곳에서 얻는 이익으로는 유지비조차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슈콘 사의 조치는 간단했다. 사업을 최소한으로 축소한 것이다. 이제 카우리코우에 들어오는 배라고는 순찰선과 약간의 보급선뿐이었다. 페이드 리전이 제국 영토와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있다는 악조건도 드레날리 성계의 경제를 거덜 내는데 한 몫을 했다. 사업가와 자본가들의 투자가 뚝 끊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체 대부분이 문을 닫아버렸다. 남겨진 사람들은 행성 밖으로 나갈 운임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행성에 갇혀버린 신세가 되었다.


 


이런 일은 이익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칼다리(Caldari)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일은 순수한 자본주의 원칙에 따라 행하는 것이 칼다리 사회의 순리였다. 따라서, 이슈콘 사는 경제 붕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지만, 대신 그에 따르는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 되는 것이었기에, 다른 국가에서 추구하는 복지 정책이란 것은 말 그대로 먼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빌라모 가리우시(Vilamo Gariushi). 전직 지질학자이자 엔지니어였던 그는 이 곳에 온 수많은 사람들처럼 생존 그 자체를 위협받고 있었다. 사실 그가 지닌 사연도 카우리코우 단지에서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슈콘 사 측에서 채굴 프로젝트를 발의하면서 너무나도 촉박한 기한을 강요했을 때, 그는 불행히도 정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 결정은 저 두꺼운 얼음을 뚫고 광산을 새로 새운다는 것이 얼마나 중노동인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무턱대고 내린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의 의견이 상사의 귀에 들어갔을 때,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그를 즉시 해고시키고는 말귀를 더 잘 알아듣는 사람으로 교체해버린 것이다.


 


칼다리 사회에서 평판은 곧 목숨이고, 기업의 결정에 의문을 갖는 일은 항명(抗命)과 다를 바 없다. 즉, 빌라모는 이 일로 인해 기업이 원하는 것 조차 헤아리지 못하는 수준 미달의 인물로 격하되었고, 이슈콘은 물론 드레날리 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으로부터 철저히 거부당한 신세가 되었다.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 달려온 일도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아내가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은 후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결국 딸과도 남남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들인 오트로(Otro) 뿐이었는데, 이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서도 계속 오직 빌라모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건물 모퉁이를 따라 걷는 동안, 불어온 바람에 빌라모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 애한테는 아직 기회가 있어, 하고 그가 머리를 숙이면서 생각했다. 오트로는 이제 16세에 접어들고 있었고, 머리가 뛰어난데다 야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 애는 언제나 칼다리 해군(Caldari Navy)에 들어가고 싶어했다. 그리고 분명 응용 과학 연수원(School of Applied Science)에 지원하면 합격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비록 학비는 비쌌지만, 빌라모는 언제나 원하는 일은 충분히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 아들을 안심시켜왔다. 아들을 절대 저버릴 수 없었다. 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이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타일러야 했다. 이 것 하나 만큼은 꼭 말해주고 싶었다. 칼다리 정부만큼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언젠가 얘기할 날이 오겠지…… 알아들을 때가 되면.’


 


빌라모가 벽에 둘러싸인 공터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아내와 딸에게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적어도 아들만큼은 저버릴 수 없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이제 그와 아들의 미래가 다름아닌 구리스타스 해적단 (Guristas Cartel)에게, 조국이 그에게 증오하라고 가르친 집단의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를 마약상으로 고용해준 것도 구리스타스였고, 그의 지식과 세련된 외모를 높이 평가하여 상류층 고객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긴 것이다. 사실 그와 구리스타스는 서로 같은 이유로 칼다리 정부를 증오하였기에, 공통된 입장을 공유하고 있어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차 해군 함장이 되고 싶어하는 아들의 꿈을 마약 장사로 뒷바라지 한다는 사실만은 절대 알려줄 수 없었고, 알려줄 생각도 없었다. 그의 감독관인 가브리엘(Gavriel)은 처음 계약할 당시부터 그런 일만은 반드시 막아주겠다고 맹세한 바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제 빌라모가 진정으로 목숨을 맡길 사람은 소위 ‘해적’이라 불리는 이들뿐이었다. ‘우리는 정말 “범죄자”인 것일까,’ 그가 몸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제자리에서 뛰면서 생각했다. ‘아니면 그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줄 아는 것일까?’


 


자동차가 언제나처럼 두 차례 곁을 지나가더니, 온통 하얀색 옷을 입고 있는 승객 하나가 내렸다. 반대쪽에서 덩치가 큰 사람이 내려 자동차 곁에 섰는데, 계속 빌라모를 주시하고 있었다. 키 작은 사람이 몇 미터 앞까지 걸어오고는 비틀거리면서 서있었다.


 


“파란…ㅂ열… 빠알간…” 이번 고객은 여성이었고, 가브리엘이 알려준 암호문을 말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억양으로 보아 회사 간부인 것 같았고, 아직 신참이었으며, 분명 정신이 나갈 정도로 약에 중독된 듯 했다.


“아마 ’파란 별은 뜨겁게 타오르고, 빨간 별은 거대하게 자란다’고 말하려던 것 같군요.” 빌라모가 말했다.“그렇다면 이 쪽에선 ‘파란 별은 요절하고, 붉은 별은 노쇠했다’고 대답해야겠군요.” 그가 고객에게 시선을 집중했지만, 같이 온 사람도 주의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맞아! ㅍ,파, 파란 별, ㅈ, 제일 좋아 ㅎ,하는 거.” 그녀가 대답하고는 하늘을 올려다 보고 혀로 눈송이를 맛보려고 했다.


빌라모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저쪽에 같이 온 사람은 누구요?”“크-크-로울라, 내 ㄱ영호원이야.” 그녀가 더듬거렸다. “그, 애도 파,파란 별 좋아해.”그녀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경호원도 뒤따라왔다.


 


“왜 여기 오신 건지는 잘 아시겠지요?” 빌라모가 물었다. 차디찬 돌풍에 몸이 움츠러들었다.<BR>그녀가 멍청히 웃음을 지으며 비틀거렸다. “ㄷ,다,당신이 ㅂ-열을 줄거니까!” 그리고는 팔을 사방으로 휘저었다.


“좋소. 블루 필 30정과 엑자일 6팩. 주문하신 대로 가져왔소.”


빌라모가 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경호원에게 신호를 보내고는 코트 안에서 비닐 봉지를 꺼냈다. 경호원이 코트를 열어 젖혔다.


원하던 ‘별’이 보이자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ㅂ-별! 별! 어서 ㅈ, 줘! 내놔!”봉지를 잡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다가 비틀거렸고, 빌라모가 뒤로 한 발짝 물러놨다.


 


“아하, 우선 돈부터 내야 하지 않겠소?” 빌라모가 말했다. 도로에서 부양 차가 한대 더 지나가자 심장이 급격히 뛰었지만, 멈추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곧 가라앉았다.


“I-s-s-s-s-k, ㅂ-열만 주면 i-s-s-k를 주겠어……” 그녀가 코트 주머니를 뒤졌다. 빌라모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커졌다.


그 표정을 본 그녀가 갑자기 휙 하고 지갑을 꺼내더니, 마치 총인 것 처럼 그에게 겨누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면서 심장이 멎었다.


“빵 빵!” 그녀가 외치고는 미친 듯이 웃어댔다.


빌라모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25,000 isk요.” 그가 이를 꽉 물고는 말했다. “이제 슬슬 송금해 주실 때가 아닌가 싶소만.” 이전에 경호원과 그랬던 것 처럼 빌라모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미리 ‘근접 탐색’ 모드로 맞춰 놓은 터라 상대방의 지갑을 이미 감지한 상태였다.“이이… 오오… ㅇ-이엉…” 그녀가 작은 버튼을 누르려 애를 썼다. 슬슬 참을성에 한계가 오고 있었지만, 구리스타스측 계좌에 돈이 정상적으로 입금된 것을 확인하고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곧바로 그의 계좌에 2,500 isk가 입금되었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다. 이 짓을 한번만 더 하면 첫 학기 등록금도 댈 수 있겠지.’


 


빌라모가 약 봉투를 내밀자 그녀가 즉시 낚아채었다.“ㄴ, 내꺼야!” 봉투를 가슴에 품고는 곧바로 뜯어내기 시작했다.


“물론이오.” 그가 지갑을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럼 이만.” 그리고 그는 곧바로 그녀를 지나쳐 공터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 어이!”


“왜요?”


“무, 무흐슨 색 별이 좋흐아?” 빈 엑자일 팩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제기랄.’ 그가 생각했다. ‘저 몸으로 저걸 한다고?’


경호원이 서서히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무슨 색 별을 좋아하냐고 물으신거요?”


“그래! 무슨 색 ㅂ,ㅂ,비,별..”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상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를 치켜보고 있었다. 한 손이 지갑이 있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집에 돌아가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빌라모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갑자기 경호원이 뛰쳐나왔다.“빨간색이오."


 


“틀렸어!” 그녀가 갑자기 양 손을 앞으로 뻗쳤다. 그는 또 지갑을 드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경호원이 피하라고 외치는 그 순간,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눈 앞이 팽팽 돌았다. 10mm 구경 슬러그 탄이 가슴을 꿰뚫고 등으로 터져나갔다. 그러나 빌라모는 고통을 느끼는 대신, 아까 그 고객이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얼굴을 햘퀴는 눈보라 속에서도 온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아내를 사랑했는지, 그 아름다운 미소를 그리워했는지를 기억했고, 눈 앞이 어둠에 싸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뭐, 뭐야! 이… 제기랄!” 눈 위에 붉게 물든 빌라모 가리우시의 시체를 본 가브리엘이 소리쳤다.


“가브리엘, 무슨 일인가.” 건조한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려왔다. 스코프의 배율을 낮추자 경호원이 황급하게 여자를 업고 부양차로 옮기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자의 머리에 십자선을 맞추고 떨리는 손을 억누르려 애썼다.


 


“둥지, 여기는 가브리엘. 적색 경보. 반복한다. 적색 경보. 응사하도록 허가해달라.” 그가 대답했다. ‘적색 경보’는 본부에 동료 중 하나가 총격을 받아 사망한 것으로 예상된다고 알리는 암호문이었다. 아직 경호원과 차 사이는 약 15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가브리엘이 십자선을 자동차의 뒷부분에 맞추었다. 연료 전지가 위치한 곳이었다.


다른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렸다. “여자가 총을 쐈나?” 본부는 가브리엘이 스코프로 보는 것과 정확히 같은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렇다, 본부.” 그가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될 일이었다.


 


“요청을 거부한다. 일단 대기하라.”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본부, 사실인가.” 경호원이 여자를 차에 던져 넣고는 문을 쾅 닫았다.“그렇다, 가브리엘. 대기하라.” 그가 끝까지 차를 조준하고 있다가, 건물에 시야가 막히자 눈을 떼었다. “썅! 그냥 살려두라니? 본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세번째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그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명령은 아직 유효하네. 장비를 챙겨서 기지로 돌아오도록. 자네에겐 다른 임무를 내려주지. 그 동안 관리하던 사람들은 다른 감독관에게 전달될 걸세.”


가브리엘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베인 제독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도 빌라모의 아들에 대해 알고 있지…” 목소리가 말했다. 몇몇 행인들이 피로 물든 시체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곧 이슈콘의 순찰 대원들이 현장에 올 것이고, 근처에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것이다. 가브리엘은 즉시 소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베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일을 그냥 덮어두진 않을 걸세, 가브리엘. 날 믿도록 하게.”


그는 방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빌라모 가리우시의 시체를 지켜보았다.


 


~


‘빌라모도 나를 굳게 믿었는데...’


‘하지만… 믿음은 언제나 도박이었지.’


~


 


오트로에게 아버지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의 역할을 하였다. 오트로 스스로도 이미 어린 시절을 너무나도 힘들게 보낸 터라, 이미 그 어떤 일이 닥쳐도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 동안 쭉 아버지로부터 위기에 닥쳐도 견뎌낼 수 있는 자세를 배워왔기에 이 혹독한 동네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누나에 대한 기억은 차츰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았고,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로서 점점 서로에게 굳게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서로가 서로의 일정을 훤히 들여다 보았다. 오트로는 입시 반에서 야자를 했고, 아버지는 이슈콘과 계속 불규칙한 시간대에 일을 해왔다. 일정에 변화가 샐길 때면 그 보다 한참 전에 서로에게 알려주고는 했는데, 오트로도 알다시피 카우리코우 단지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오겠다고 한 그 시각에 대신 두 남자가 문 앞에 나타나자 오트로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숨을 죄어오는 공포에 맞서면서, 오트로는 소리 없이 아버지가 평소에 권총을 숨겨놓은 방으로 들어섰다.


 


두 번째 노크가 들려왔다. “오트로,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키 크고 나이 들어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부엌에 있는 감시 화면을 보면서, 오트로는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탄창을 손잡이에 넣었다. “오트로. 해칠 생각은 없다. 미안하지만 나쁜 소식을 전하러 왔단다. 얘기할 시간이 촉박해.”오트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부엌 칸 뒤에 몸을 의지하며 총을 문에 대고 조준했다.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고, 키 작은 남자가 코트에서 작은 카드를 꺼내어 자물쇠에 넣었다. 그 다음 장면을 본 오트로는 깜짝 놀랐다. 키 큰 사람이 두개골 뒤쪽의 홈에 조그만 장치를 꽂은 것이다.


 


“오트로, 날 믿어야 한다.” 키 큰 사람이 말했다. 건조하고 깊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지만, 입술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트로는 곧 이 키 큰 사람이 우주선 함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할 말은 얼굴을 마주보면서 하는 게 나을 거다.” 함장이 말했다. 키 작은 남자가 문을 향해 어떤 장비를 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나이답게. 너희 아버지도 원하는 바일 거야.” 오트로의 눈 앞이 눈물 때문에 흐려졌다. 이 남자가 곧 말할 무서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권총을 들고 있는 팔이 떨려 조준도 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너의 예감이 맞다, 오트로. 너희 아버지는 죽었다. 우린 그를 죽인 사람들로부터 너를 지켜주려고 온거야.”오트로가 등을 부엌 칸에 매주다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더 이상은 상관 없었다. 키 작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들어와서 구개 숙인 오트로에게 총을 겨누었다. 함장이 뒤에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고통을 잘 알지. 곧 뒤따를 분노도 말이야. 하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게 있다. 우리와 함께 가서 새로운 삶과 함께 꿈을 실현할 기회를 얻든지, 아니면 여기에 남아 혼자 모든 것을 헤쳐나가던지. 둘 중 하나다.”


 


오트로가 아직 권총을 손에 꾹 쥔 채 고개를 돌렸다. 지금 알고 싶은 것은 오직 하나였다. “당…신이 죽인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지?” 그가 힘겹게 물었다.


 


“증거를 보여줄 순 있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나를 믿을 지 여부는 전부 너에게 맡기마. 공평하지 않다는 건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너도 이미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겠지. 30초  남았다.”


 


오트로가 권총을 돌려 총신을 자기 이마에 갖다 댔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선택이었다. 방아쇠울에 넣은 그의 엄지 손가락이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내가 칼다리 해군에서 쫓겨났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 함장이 말했다. 오트로의 엄지가 움찔하고 멈췄다. “만약 정말 그랬다면, 너희 아버지처럼 선한 사람을 도와줄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거야. 지금의 너도 마찬가지고.”


 


순간 오트로에게 살고자 하는 본능이 돌아왔다.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총을 내렸다.


“5초.”


 


오트로가 총을 멀리 던져버렸다. 기울어진 바닥을 타고 총이 부엌 밖으로 미끄러졌다. 곧 검은 부츠에 총이 밟혀 멈췄다. 위를 올려다 보자, 아까 그 키 작은 남자가 총을 내리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서 진심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BR>곧 함장이 오트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라.” 그가 말했다.


오트로가 손을 쥐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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